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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말씀 : QT :헬라어 QT
2021년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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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가시떨기에
  마가복음 4:7-4: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Other seed fell among thorns, which grew up and chocked the plants, so that they did not bear grain.

kai; a[llo e[pesen eij" ta;" ajkavnqa", kai; ajnevbhsan aiJ
And other fell among the thorns, and came up the

a[kanqai kai; sunevpnixan aujtov, kai; karpo;n oujk e[dwken.
thorns and chocked it, and fruit it gave not.

1.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kai; a[llo e[pesen eij" ta;" ajkavnqa" 카이 알로 에페센 에이스 타스 아칸다스
And other fell among the thorns

하나님은 당신이 공급하시는 말씀의 씨앗을 가시떨기에도 떨어지게 하십니다. 길가에도, 흙이 얇은 돌밭에도, 그리고 가시떨기에까지 떨어지게 하는 것은 떨어지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씨앗을 차별 없이 떨어지게 하십니다. 이후에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열매가 없었다는 변명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라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에도 다 떨어지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명하심을 따라 이후에 뿌리는 자 된 믿음의 선진들도 예수님처럼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에도 뿌리셨습니다.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뿌리는 자는 계속하여 뿌리십니다.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끊임없이 반복하는 길가의 마음 밭을 가진 자들일지라도 뿌리는 자는 그 씨를 길가에도 여전히 뿌리고 또 뿌리십니다. 말씀의 씨앗은 세상의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씨앗이지만 그래도 뿌리고 또 뿌리십니다.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질 때마다 싹이 나오긴 하지만 해가 돋은 후에는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마른 것을 보시면서도 흙이 얇은 돌밭에 더 이상 뿌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뿌리고 또 뿌리십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지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이나 열매가 없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존재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열매만 보십니다. 다른 것은 보시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열매는 아무 밭에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옥토에만 존재합니다. 다른 밭에도 열매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다른 밭도 인정하실 터이지만 옥토 외에 다른 밭에는 열매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옥토가 되기까지 마음 밭을 끊임없이 갈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 갈아도 되는 것이라면 이런 말씀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길가든지 돌밭이든지 가시떨기 밭이든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기에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아예 하나님 말씀 자체를 거부하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시키려고 별의 별 일을 다 고안하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사람의 말에 더 능력 있음을 입증하려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혹 새들이 와서 금세 쪼아 먹는 길가 밭일지라도 고집하는 것은 더 나아보이기도 합니다. 돌밭은 싹이라도 나기에 싹을 거두어서 새싹 비빔밥이라도 해 먹으면 됩니다. 가시떨기 밭은 더욱 발전적입니다. 세상 밭에 비하면 가능성이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모든 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밭이 아닙니다.
뿌리는 자가 뿌리는 때는 정해진 시간에만 뿌리십니다. 인생은 아무리 길어도 일백 이십 년을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 많은 세월을 살았다 할지라도 이런 것조차 하나님 앞에서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단 한 가지 열매만 내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 밭에도 모두 말씀의 씨앗을 뿌렸기에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 밭에도 동일한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때가 이르기 전에 내 마음 밭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길가 밭임에도 불구하고 옥토 밭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들이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말씀의 씨앗을 다 빼앗아 버림에도 옥토라고 우기지 말아야 합니다. 돌밭도 마찬가지입니다. 싹만 자랑하다가 싹수가 노란 사람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긴 새싹 가운데는 노랗고 예쁜 새싹도 있긴 하지만 그것조차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뿌리는 자로 하여금 더러는 가시떨기에도 떨어지게 하는 것은 가시떨기에도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가 아닌 옥토일지라도 원수가 가라지를 잠자는 사이에 뿌리고 갑니다. 이상한 일은 이 세상에서는 가라지가 더 잘 자라는 것입니다. 옥토가 되어도 가라지를 뿌리지 못하도록 깨어 있는 자 되어야 하는데 깨어 기도하기는커녕 깨어 세상 것에만 눈에 불을 켜고 세상 소식에 열린 귀가 되는 것은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가시떨기이므로 길가나 돌밭에 비교하여 비교우위에 있다고 넋 놓을 때가 아닙니다. 가시떨기이기에 더욱 개간해야 합니다. 가시떨기가 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밭에서 왕 노릇하실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뿌리시는 것은 말씀의 씨앗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자라고 또 자라서 예수님이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시떨기의 밭을 고집하면 말씀의 씨앗이 더 이상 자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의 씨앗은 귀한 천국의 씨앗이지만 뿌림을 당한 자가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를 고집하는 한 스스로 열매 맺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열매 맺으려면 뿌림 받은 자들의 마음 밭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말씀의 씨앗이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1)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말씀의 씨앗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환의 섭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순종의 법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향하여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부르신 것은 아담은 흙으로 만든 자이기에 흙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기에 부르신 것입니다. 흙으로 온 자에게 말씀이 없으면 그저 흙에 불과하기에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으로 부르시고 당신의 말씀으로 교제하고 당신의 말씀으로 함께 살게 하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괜히 에덴동산을 거니신 것이 아닙니다. 혹자는 하나님이 식사하신 후에 하신 식사 소화시키기 위하여 에덴동산을 거니신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 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매 맺는 자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흙으로 만든 아담을 향하여 아담아 아담아 하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담은 하나님을 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이런 마음 밭으로는 종일 수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땀을 흘리고 일해야만 먹을 것을 공급 받는 자 되는 거지요. 그로 인하여 이 세상엔 가시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시떨기 밭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가시떨기 밭엔 가시떨기가 가득하기에 가시떨기 밭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밭에도 뿌리는 자는 뿌리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엔 가시가 더 잘 자랍니다. 가시는 자라면서 그 기운으로 말씀의 씨앗을 막기까지 합니다. 가시의 기운이 말씀의 기운보다 더 센 것은 말씀이 가시보다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시는 이미 이 세상의 토양과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미 죄로 인하여 죄로 가득한 세상이고 죄가 퇴비나 비료 된 세상이기에 가시는 더 잘 자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시의 기운이 말씀의 기운보다 더 득세하는 것은 가시의 기운은 이 세상의 기운에 합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말씀의 기운이 더 득세하는 곳은 곧 옥토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길가도 얼마든지 개간하면 옥토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돌밭도 그 속에 있는 돌을 다 내어버리면 훌륭한 옥토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가시떨기도 가시의 기운을 막기만 하면 말씀의 기운으로 가득한 옥토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세상엔 말씀의 기운이 득세할 만큼 말씀이 우위 되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는 당신의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그 말조차 말씀으로 심판하십니다. 천국의 말씀을 씨앗 삼아 뿌리고 또 뿌렸음에도 아무 열매 맺은 것 없기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가시의 기운이 강한지 말씀의 기운이 강한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시의 기운이 강하다면 말씀의 기운이 더 강할 수 있도록 가시의 기운을 제거해야 합니다. 가시가 더 이상 자랄 수 없도록 가시를 다 베어버려야 하지요.

(2)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결실하지 못하였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결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각 씨앗에 대한 열매입니다. 그래서 장소를 불문하고 뿌리는 자로 하여금 다 뿌리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이나 그들의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라 뿌리는 자로서의 행하심을 다 하신 분이십니다. 결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책임도 아닙니다. 성령님을 탓할 것도 아닙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뿌리는 자가 뿌릴 때 마음 밭에 따라 자랄 수도 있고 자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라게 하시려고 악인과 선인에게도 해를 비취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도 비를 내리심으로 당신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에게는 아예 말씀의 씨앗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말씀의 씨앗을 날마다 뿌리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를 고집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라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길가로 태어났기에 길가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돌밭이나 가시떨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믿음의 사람조차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은 죄악으로 퇴비 삼고 비료 삼는 세상에 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기운이 더 강해 말씀의 결실조차 가로막는 세상이지만 옥토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 밭을 개간하고 또 개간하는 자여야 하지요. 결실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결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태어나면서부터 옥토로 태어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결실에 대한 이런저런 핑계 댈 수 없음을 잘 알라 하십니다.

2. 하나님의 마음
더러는 가시떨기에도 떨어짐을 잘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에도 모두 말씀의 기회를 주십니다. 이렇게 기회를 주시는 것은 결실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씨앗의 상태를 그대로 보전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씨앗에서 자라 많은 결실 맺는 자를 찾으십니다. 가시떨기의 기운이 자라 가시떨기의 기운으로 인하여 결실치 못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가시떨기의 기운이 지금은 말씀의 기운보다 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는 말씀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때에는 가시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말씀의 기운이 내 속에서 자라게 하는 자 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기운이 내 속에서 자라는 자 되려면 가시의 기운을 제거해야 합니다. 돌밭에서 돌을 제거하듯이 가시 자체를 제거 하는 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요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가시
ajkavnqinon
아칸디논
thorny

이 세상은 가시의 기운을 자라게 하여 예수님에게 가시 면류관으로 씌우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님을 보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며 소리 질렀습니다. 결국 가시의 기운이 이긴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이 가시의 기운을 이기실 뿐 아니라 사망의 권세까지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가시의 기운뿐만 아니라 가시 면류관까지 생명의 면류관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일러주신 말씀대로 행하셨기 때문임을 잘 알기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게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 씨앗을 뿌리는 자로 하여금 뿌리게 하실 때 더러는 가시떨기에도 떨어지게 하는 분이십니다.
 
 
  (1) 예수님의 보혈 - 가시떨기 고집하여 가시의 기운만 자라게 하였던 것
(2) 예수님의 생명 - 가시떨기의 기운 제거하고 말씀의 기운으로 승리키로 한 것
 
 
더러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보고도           가시의 기운 자라 
가시의 기운 자라도록 가시 면류관까지 씌우는 자 되지 않게 하소서
방치하고 무관심하였던 것 가시의 모든 기운 이기신
용서하여주소서 말씀 되시는 예수님 본받는 자 되게 하소서

 
     
 
 
  감사 회개 중보 간구